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사(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문단 편집) === 오리지널 === 오리지널 '''유일한 탱커.''' 이 한 마디로 이 당시의 위상이 설명된다. 전체적으로 특성이 난잡했던 시절이라 곰드루나 보호기사가 탱커를 맡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오로지 전사만이 제대로 된 탱킹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만큼 전사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그 대우는 천차만별이었다. 만렙 찍고 4대인던이나 다니는 전사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지만 레이드에서의 티오는 항상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상위권 전사들만이 레이드에 갈 수 있었다. 특히 오리지널 초기 [[화산 심장부]]와 [[오닉시아의 둥지]]를 돌던 유저들은 레이드에 대한 지식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무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딜사이클과 영약, 음식, 물약 등의 도핑은커녕 BiS같은 가장 기본적인 5인인던 파밍의 개념조차 정립이 안 되어있던 때이다.] 화산심장부나 오닉시아 정도는 충분히 공략이 가능한 아이템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인맥에서 밀린다는 이유만으로 레이드에 끼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사실 화산심장부와 오닉시아는 4대인던 파밍과 제작아이템, 그리고 역할에 맞는 특성만 적절히 갖추고 공략만 안다면 40명에 못미치는 인원 내지는 40명이래도 탱커만 좀 갖춰입는다면 나머지는 녹템이거나 만렙이 부족한 상태로도 깰 수 있으며, 이는 클래식 서버에서 최초로 화산심장부와 오닉시아를 공략한 APES 공대가 입증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당시엔 거의 없었다.] 결국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장비를 갖춘 선발주자, 즉 일찌감치 서버에서 공격대 길드에 속해있었으면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공략에 들어간 공격대의 극소수 전사들만이 계속해서 레이드를 뛰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더 좋은 장비를 갖추며 지위를 굳혔다. 반면 후발주자로서 레이드에 참여하지 못하는 전사 유저들은 장비가 없어 레이드에 가지 못하고, 레이드에 못 가니 장비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 공대에 빈자리가 생기기만을 기도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그당시 유저들의 레이드개념은 비단 전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리지널 당시 PvE에서 딜러로서의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다. 딜러로서의 전사는 [[안퀴라즈 사원]] 이후부터 던전 공략을 위해 높은 딜링이 필요하게 되자 분무 전사를 필두로 부각되기 시작했지만, 어그로가 중요한 오리지널 시절 데미지 미터기와 어그로 미터기를 동시에 뚫고 나가는 문제와 템빨에 극히 민감한 문제 때문에 제대로 딜을 하기 어려웠다. 또한 당시 5인 파티에서 딜러의 기본소양으로 여겨지던 메즈가 하나도 없어 5대 던전에서 파밍할 때 기피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PvP도 못 하는, 레이드 말고는 쓸 데가 없는 딜러였다. 하지만 노스탤지아 등 클래식 서버를 오래 해 온 유저들의 분석에 의하면, 일단 딜링 포텐셜 자체는 전 직업 중 분노 전사가 최강이다. 그에 걸맞는 장비와, 폭발하는 어그로를 받아 줄 탱커가 필요할 뿐. PvP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만 템빨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었다. 무기를 포함한 장비야 클래스 불문하고 좋을수록 좋은거지만 전사의 경우는 그 영향이 특히나 컸다. 당시 전사는 적절한 장비를 갖추고 크리 운만 조금 따라준다면 글쿨 2~3번에 어지간한 천 클래스를 삭제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전사가 달라붙기 힘든 것은 그 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2~3방에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다. 순삭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해서 좋은 장비가 필수였던 것. 사실 오리지널 시절 내내 그랬던 것은 아니고, 4대 인던템을 대충 걸치고 [[아케이나이트 도끼]]를 착용한 전사들이 옆에 힐러를 끼고 닥썰하는 것이 가능한 시절도 있긴 있었다.[* 당시 갓만렙이 피통 2000. 인던 파밍을 마친 이는 피통 3000이었는데 아케도끼를 든 전사가 격노가 뜨면 40% 증가된 데미지로 인해 천, 가죽에게는 죽격크리 1500, 평타크리 1000씩 들어가 불리하다가도 한방에 역전이 가능했었다.] 다만 [[아케이나이트 도끼]] 만들기가 쉽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컨트롤 수준도 낮았기에 템 좋고 힐러가 붙어있어야 비로소 강했다는 인식이 주류였지, 먹이사슬의 최상위로 군림하지는 않았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Pat[* Pat의 경우 죽소버그를 악용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죽소버그가 없는 장면이 더 많았다. 여담으로 Pat의 영상 중 오리 땐 법사를 두 방에, 불성 땐 그 '[[영고생착]] 흑마'를 단 세방에 보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과 Maydie가 이런 식으로 영상을 찍었고, 전사와 무기 메커니즘이 연속으로 너프당하기까지는 꽤나 강력한 클래스였다. 물론 너프 이후에도 특유의 높은 피통과 방어도, 광역 공포, 치유 감소 디버프 등으로 인해 전장에서 전열을 맡기에 매우 적합한 클래스기는 했다. 그 외에도 "그러므로"[* 아이디 대신 Korea warrior pvp - Guldan server 라고만 올라와 많은 해외 유저들을 궁금케 한 이 영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화제가 되었는데, 레인타임이 등장하기 이전에 국내외에서 최고의 전사 영상으로 찬사를 받았다. 나엘 전사의 그림자 숨기의 유용성과 그 당시 전사가 보여줄 수 있는 기본 플레이는 다 보여줬다고 평가 받았고 아케도끼 전사의 위용을 잘 보여주었다. 레이드도 뛰어서 드물게도 투지셋과 몇몇 화심템을 걸친 템씹이기도 했다. 연이어 레인타임이 등장하자 좋은 전사들은 왜 다 한국에서 나오냐. 코리아 너프 플리즈~ 라는 반응도 꽤 있었을 정도. 여담으로 오리지널 돚거의 대부 '''Niar'''는 레인타임 영상에 악플을 달았는데~~ 읽어보면 정말 졸렬하다~~ 그러면서 자기가 감명받은 전사는 따로 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그러므로'였다.], "[[Laintime|레인타임]]" 및 "Swifty"[* 매크로를 이용한 재돌진을 선보이며 가히 전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나엘 전사였다.]를 위시로 하는 컨트롤파 전사들이 큰 인기를 끌던 시절도 이때였다. 이 당시에는 축복받은 몇몇 직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다 그랬지만, 그중에서도 성기사와 함께 레벨업이 매우 힘든 클래스로 꼽히곤 했다. 클래식에서 정립된 바로는 성기사보다도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난, 레벨링 최약체 직업. 일단 적중을 신경쓰기 어려운 레벨업 구간인만큼 분노 수급이 안 된다. 게다가 죽격이나 피갈을 배우는 40레벨 이전까지는 쓸만한 공격기술이 없다.[* 영격은 딜량 자체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 이걸 쓰면 다음 평타가 강화되는 대신 분노가 쌓이지 않아 분노 효율이 쓰레기였다. 분쇄는 난사하면 지속시간이 갱신되여 틱뎀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난사가 불가능했고, 데미지도 너무나 약해 분쇄 쓰느니 영격을 쓰고 마는 기술이었다. 제압은 데미지가 강력하고 무조건 적중인데다 치명타 확률도 높았지만, 상대가 공격을 회피해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몹 잡는 동안 한 번도 발동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마격은 20% 체력 제한과 더불어 당시만 해도 분노를 모조리 소모하는 기술이어서 몹 한번 잡을 때 두 번 쓰면 많이 쓰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방어구 가르기 연마를 찍은 후 분노소모 9짜리 방어구 가르기를 난사하며 제압이 뜨기를 바라는 눈물나는 방법마저 있었다. 36레벨에 그나마 기술다운 기술인 소용돌이를 배우는데 이것도 데미지 면에서 그렇게 만족스러운 스킬은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쿨다운이 9초로 적지 않았다. 어찌저찌 40레벨에 도달한 뒤에 죽격이나 피갈을 배운다고 해도, 분노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몹 하나 잡을때 한번정도나 간신히 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성기사처럼 자힐이 돼서 연속으로 사냥을 하거나 애드가 나도 버틸 수 있던 것도 아니고, 탈출기나 생존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여러 직업들의 애로사항을 모조리 모아놓은 셈이다. 30레벨대에 [[소용돌이 무기]] 퀘스트를 통해 매우 좋은 양손무기를 얻기는 했지만, 딱 그걸 드는 순간에 강해졌을 뿐 40레벨 이후에는 원래 속도로 돌아가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